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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음을 알지만
그 때 다른 일이 벌어졌으면, 지금의 나는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하고 생각하게 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 사실 바로 그 순간이 아니더라도, 내게 많은 기회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 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어떤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면서, 이 때 모든 문제들이 시작되었다고, 그렇게 자조하는 것이 우울증으로의 지름길이라고, 많은 의사들이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의 불행은 그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을 끊임 없이 돌아보는 그런 나 때문이리라. 시간은 잔인하게도 빨라서, 그 곁에 있다가는 깊게 베여 버리기 십상이다. 내게 마지막으로 기회가 주어졌던 그 날로부터 벌써 4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잠깐일줄만 알았던 헤어짐은 어느새 영구적인..
2020.11.19 -
나이브한 철학의 무용성
나이브한 (실천)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요 며칠 나를 둘러싼 고민이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은 '박사과정생'으로서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넓은 의미로 본다면, 그것은 사랑의 문제였다. 도대체 사랑의 '본질'이란 (그것이 가능하다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내 삶 전체를 함께한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사회'철학적으로 사랑을 본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이론'이 되어야 하는가? 아도르노, 일루즈를 경유하기도 하고, 사랑과 정치를 연결짓는 누스바움도 살펴보다가, '사랑이라는 '인정관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에는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가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잠정적이지만..
2020.10.09 -
논문 계획서를 제출했다.
8월 말에 드디어 논문 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수정할 구석이 하루에 한개씩 보인다. 연구 동료들 앞에서 계획서 내용으로 발표하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계획서를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주제를 조금 더 좁히고, 각 내용 간의 유기적 연결에 신경쓰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다. 코로나로 집에 있으니 아무래도 살림에 전념하게 되는 것도 있고, 집중도도 좋지 않다. 그래도 Stay at Home 해야겠지. 올해가 가기 전에 논문 개요를 확정짓게 되면 좋겠다. 박사 논문을 '대단한' 논문으로 해 보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꽤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하다. 내가 선택한 주제가 시의적절한 것이었으면 하고, 학계 너머에 있는 이들의 삶에 도움이 ..
2020.09.06 -
올해의 사진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를 그리 신경쓰지 않고 이곳 저곳 다니는 중에도, 나는 집돌이로 지내고 있다.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혹시나 내가 무증상 감염자일 때 내가 감당해야 하는 도덕적 책임감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외출을 하게 되더라도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실내 밀페된 공간을 피해 야외 산책을 다녀 오는 정도이다. 친구들과의 약속 대부분은 야외에서 멀찍이 떨어져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하거나, 먼 미래를 기약했다. 그러다보니 집 앞 노들섬은 내게 가장 좋은 산책코스가 되어 준다. 집에서 대충 티셔츠에 반바지 걸치고, 가벼운 샌들을 신고 나서면 걸어서 20분 안에 도착한다. 사람도 많지 않고, 사람이 조금 몰려도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가서 섬을 한 바퀴 돌거나, 여의도 쪽으로 지는 노을을..
2020.09.06 -
추모의 권리
1. 인권변호사의 꿈을 품었던 적이 있다. 아마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인권변호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사회적 약자들, 어떤 권력들에 억눌려 법 앞에서조차 평등하지 않은 이들을 도왔던 것이 내게는 매우 옳고 추구할만한 일 같아 보였다. 을 쓴 조영래 변호사가 첫 번째 롤모델이 되었지만 일찍 작고하신 탓에 나는 그의 생생한 삶을 글로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역사가 된 사람이었다. 그 다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박원순이었다. 존경이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 거대한 언어라서, 나는 누군가가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부모님이나 다른 좋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이들을 닮고 싶어하지 '존경'한다고 하지는 못했다. 존경은 현실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사실 ..
2020.07.11 -
허비한 삶에 대한 넋두리.
한때 마음에 품었던 사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우리가 처음 알게 된건 8, 9년 전이었는데, 나는 군제대 복학생으로, 그 사람은 복전생으로 만났다. 관심사도 같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한 번 만나면 끝나지 않는 대화에 새벽까지 휴대폰을 붙들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가진 애인의 이상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고, 추진력과 결단력을 갖춘 사람. 우리는 연애에 대해서도, 연애의 본질, 연애 상대로서의 나, 이상형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더 진전되지는 않았고, 우리는 점차 만남을 줄여가다가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마음과 용기가 한 뼘씩 부족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많이 들리고, ..
2020.05.17 -
투병(?) 일기 3.
어느 새 지난 주가 되어 버렸는데, 지난 목요일에 보건소에 가서 결과를 보았다. 접수를 하고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몹시 긴장되어 두근두근. 덕분에 혈압도 매우 높게 나왔다. (혈압을 보고 선생님은 "아니 혈압 오늘 무슨 일이에요!" 하셨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두 달 전에는 '약을 먹는 것이 좋지만 그래도 조금 노력은 해봅시다' 였는데, 이제는 '조금만 더 관리하면 정상이네요' 가 되었다. 매우 나쁨에서 조금 나쁨으로. 총 콜레스테롤은 (사실 이건 큰 의미 없지만) 60정도가 떨어졌고, HDL은 약간 떨어졌지만, LDL이 50 정도가 줄었다. 혈당 수치도 조금 떨어졌고. 그래도 갈 길이 멀지만.. 충분히 즐거운 결과였다. 선생님은 두달 정도 더 있다가 한 번 더 검사해보자고 하셨다. 다만 두 가지가 ..
2020.04.21 -
투병(?)일기 2.
지난 1월 말 즈음 건강진단에서 고지혈증을 판정받고는, 2월 초부터 식이요법과 운동 + 오메가3를 매일매일 진행해왔다. 2월부터 4월 초까지의 인생은 거의 였다. 본업을 포기하고 다른 것들을 많이 했고, 나름 즐거웠다. 고지혈증이 있는 이에게는 스트레스도 안 좋다고 들었는데, 그 점에서도 좋은 방법이었다. 오늘 학교 보건소에 가서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았는데, 간호사분께서 "인바디도 하고 가세요~" 하셔서 인바디를 하고 왔다. 인바디가 건강함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겠으나..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근육은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했다. 매일 재는 집안의 체중계로는 두달동안 5.5킬로 정도를 줄였다. 기쁨 반, 아쉬움 반의 성적표. 다행스러운 점은 근육이 빠지지 않고 체지방이 꽤 줄었다는 것이고, 아쉬운 점은..
2020.04.14 -
메모
"아우슈비츠 이후의 서정시는 야만적이다"하고 아도르노는 적었다. 아도르노의 철학을 좋아하지만, 종종 그의 세계가 좁은 것이었음을 느낀다. '유럽중심주의'라는 표현은 다소 과도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적확하기도 하다. 유럽인, 특히 유태인인 동시에 유럽인인 그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악은 아우슈비츠였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서구 문명사회가 딛고 있는 다른 지역의 혈흔을, 그러나 지워지지 않을 그것을 문질러버린다. 아우슈비츠는 '보편적'인 비극이었을까?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진보를 가정한다면) 진보하는 인류의 역사를 크게 뒤틀리게 한 거대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신화로부터 벗어난 계몽이 다시 신화로 진입하는 그 결과물로서 아우슈비츠는 비-유럽인들에게도 동일한..
2020.03.24 -
책을 보다가 엄마 생각을 했다.
책을 보다가 엄마 생각을 했다.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을 보다가, 엄마 생각을 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마마보이였다. 엄마 껌딱지였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전부인 시기를 보낸다. 내 경우는 그게 조금 더 길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탁하고 혼재되어 있어서, 지금 떠올려보면 명료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조각들, 유치원 시절 죽음이 싫다며 엄마 품에서 울었던 기억, 초등학교 시절 엄마와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분당 정자동에 있던 버거킹에 간다며 동생과 셋이 걸어서 갔던 기억 등등은 조금 생생하다. 평범한 일상이었던 것이 추억으로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더 기억이 생생한 시기는 아마 내가 성장해 조금은 반성능력을 갖추었을 때일 테..
202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