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7. 00:36ㆍ짧은 생각들
한때 마음에 품었던 사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우리가 처음 알게 된건 8, 9년 전이었는데, 나는 군제대 복학생으로, 그 사람은 복전생으로 만났다. 관심사도 같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한 번 만나면 끝나지 않는 대화에 새벽까지 휴대폰을 붙들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가진 애인의 이상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고, 추진력과 결단력을 갖춘 사람. 우리는 연애에 대해서도, 연애의 본질, 연애 상대로서의 나, 이상형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더 진전되지는 않았고, 우리는 점차 만남을 줄여가다가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마음과 용기가 한 뼘씩 부족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많이 들리고, 나는 조금 작아진다. 이것은 '금사빠'의 최후다. 나는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상대의 친절에 호감을 느끼고, 대화가 잘 통하거나 가치관이 비슷하면 나는 그 사람과의 연애 가능성을 상상했다. 좋게 말하면 외로운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많은 것들을 연애관계로 환원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한 뼘이 모자랐고, 시간이 흘러 나는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런 친구들이 하나씩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나는 그렇게 아쉽지도 않지만 동시에 그렇게 기쁘지도 못한 얼굴로 그들을 하나 둘 보낸다. 청춘의 분투에 그들은 승리자였고, 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나만 빼고 다들 어른이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을 보며 좋은 연애의 꿈을 품었다. 그래서 그 싹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감정에 훅 빠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애정결핍이었을 수도 있고, 다른 심리적 원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마음과 결단을 구분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더 큰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치만 조금 더 내게 나타난 인연들을 소중히 했더라면, 나는 지금 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른 살이 넘으면 삶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 되지 않을까 했다. 시야는 넓어지지만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지고 고민거리만 쌓여간다. 고개를 돌려 보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지난 날의 후회들과, 그것들을 삶의 허비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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