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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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보호자
10년 되었다. 엄마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종종 쓴 적 있는데, (여행블로거가 되고 싶었지만 일기장이 되어버린...)돌아가신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돌아간다'라는 표현은 늘 오묘하다) 10년만에 대학병원에서 보호자 노릇을 했다.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바로 명절을 보내서 컨디션이 안좋으신가 했는데,심장 쪽에 문제가 생겨서 동네 내과->대학병원 응급실->입원의 절차를 밟았다.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시술을 통해 위급 상황은 해결했는데,그덕에 3일 정도 병원에서 머물면서 보호자 역할을 했다.이제는 퇴원해서 집에서 간병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10년 전에는 28살이었으니, 다들 어린 보호자라고 조금 안쓰러워 하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대해주었던 기억이 난다.이제는 38살이라.. 조금 젊지만 딱히 그런건 없었다...
2025.02.10 -
공부만 하고 싶다는 마음
예전 애인이 “공부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 적 있다.나는 ‘놀기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요즈음 여러 일이 쏟아져서 내 연구를 못하게 되니까, 이제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2025.02.06 -
그럼에도, 사회철학 전공자입니다.
군대 다녀 왔을 때부터 전공을 구체적으로 정했으니, 사회철학 전공자로 살아온 지 12년 정도 된 것 같다.물론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관심을 가진지는 훨씬 오래 됐지만. 기본적인 관심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를 움직이는 동기 중 하나다.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밖에 없기에,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사회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정의는 행복의 조건인 것이다. 물론 정의는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가치지만. 전공자로 살아온 그 시절의 한국정치는 썩 평온하지 못했다.사회철학의 범위는 넓지만, 많은 부분은 정치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기에나는 연구자로서 현실문제를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면서 나는 점점 괴로워했다. 종종 형이상학을 ..
2024.12.08 -
갈 길이 먼데..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어느새 9월이다. 올해가 4개월 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시간은 돌아볼 새도 주지 않고 빠르게 뜀박질한다. 다음 학기는 모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었)다. 수강신청이 끝나고 단 두 명만 신청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관악으로의 복귀에 기대 반 불안 반의 상태였다. 다른 희망적인 가능성을 품지도 못할 정도로 학생이 적어서, 내 강의는 폐강의 운명을 맞았다. 오히려 좋다. 고 생각한다.두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고, 모교까지 추가한다면 나는 세 학교에서 강의 네 개를 하게 되는 거였는데,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사실 수업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실적을 쌓기도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걱정이 좀 있..
2024.09.01 -
안녕 2023, 안녕 2024
2023년은 변화가 많은 해였다. 대학교 입학 후부터 군대를 빼고 계산해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았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오게 되었다. 지방출신임에도 서울에 적응했는지, 서울 시민이 아니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 조금 오래 걸렸다. 특히 서울을 왕복으로 다녀오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빠르게 되지 않았다.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석박사를, '대학원생'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올해에는 박사를 마치고 강사가 되었다. 하반기에는 수업을 맡았으며, 강의를 하고, 시험을 출제하고, 성적을 주었다. 오늘까지 컴플레인 메세지에 답변했다. (상대평가 규정이 엄격하여 올려주지 못함을 한참 설득했다. 나도 아쉽다.) 나 스스로를 연구보다는 교양 강의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2023.12.31 -
근황: 박사가 되었다.
박사 심사는 6월 말에 끝났는데, 블로그에는 적지 못했다. 뭔가 거창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 때 뭐라도 쓰고자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었다. '나같은 사람도 박사를 받을 수 있다니.. 한국의 학위체계는 도대체..!' 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허술한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고, 나 자신은 야망이 없는 논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무리단계에서는 굉장히 큰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논의를 100% 완성하지도 못 했다. 학위 논문은 일종의 license이며, 완벽한 학위논문이 나오는 경우는 잘 없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했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주변의 선생님들이나 동료들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그것이 나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감싸주기 위해서 했던 말들이든, 혹은 정말로 ..
2023.08.15 -
근황
1. 경기도 군포로 이사를 왔다. 지방에서 초중고를 나왔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서울살이가 그동안 내게 심어준 특권을 이제야 자각하는 중이다. 군포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부모님 자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분양을 받으셨지만 우리는 귀농을 했고, 그 이후에는 서울에서 전세나 월세를 살았다.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집에 이제야 들어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여기서 언젠가 함께 사는 것을 꿈꾸셨는데,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이사 첫날 거실 한 가운데에 어머니 사진을 두었다. 2. 논문 심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사와 초고 제출이 겹쳐서 매우 힘들었다. 3일 연속으로 하루 2-3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몸이 버텼는데, 제출과 짐정리가 끝나고 며칠 ..
2023.04.23 -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어른이 될 시간이다.
2023.03.13 -
꿈
거창한 꿈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만 나중에 하고 싶은 작은 일이 하나 있는데, 나이든 유기동물을 데려와 생을 마감하기 전 몇년, 몇달이라도 따스한 날들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주변의 몇몇 사례들을 듣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머릿속으로도 가슴속으로도 다짐했다. 현재 동거중인 냥아치를 포함해서 유기묘를 두 차례 키웠다. 물론 여지껏 해온 대로, 어린 고양이를 만나 평생 사랑을 주고 받는 것도 의미 있고, 추억도 많을 것이며, 조금 더 즐거울 것이겠지만.. 그래도 요즘은 '쓸쓸하지 않은 이별'에 마음이 가는 중이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은데 연관이 있는 걸까? 정이 쉽게 드는 타입이라, 내게는 큰 슬픔의 반복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따뜻한 날..
2023.01.18 -
정훈 작가에 대한 추모
한때 씨네필을 꿈꾸고, 씨네21을 정기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전에도 도서관에 가면 찾아 읽곤 했었다. 아직 문해력이 뛰어나지 않던 시절 씨네21의 기사들은 다소 어려웠고, 영화들은 생소했는데, 그래서 페이지의 말미를 장식하던 정훈이 만화를 항상 열심히 보고는 했다. 매우 코믹하지도, 매우 심오하지도 않고, 소소한 웃음으로 넘기고는 했지만, 그러한 세월이 십여년이나 지나니 인생 한 켠의 만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얼마 전 부고 소식을 들었다. 백혈병이 급격하게 진행된 것 같았다. 먹먹함에 하루 정도는 다른 작업을 하지 못했다. 어떤 애정들은 대상의 상실을 마주해야만 그것의 현존을 알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정훈 작가의 명복을 빈다. 씨네21에 올라온 추모 기사 링크를 달아놓는다. htt..
2022.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