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9 경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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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혹은 동궁과 월지
- 안압지, 혹은 동궁과 월지. 경주에 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이래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경주의 명칭들은 낯설지 않다. 아마도, 한국에서 문과의 생을 살아가다 보면 경주의 장소들이 끊임없이 소환되기 때문인 듯 싶다. 수능에서 국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불국사, 첨성대, 석굴암, 천마총, 황남대총... 그리고 안압지. 기억 속에서는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는 이 장소는, 이번 여행에서 다른 이름을 하고 있었다.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나는 '동궁과월지'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서는, '과'가 무슨 한자일까 무슨 뜻일까 궁금해했지만, 동궁 and 월지 였다. 조선 궁궐로 치면 창덕궁 후원 정도의 장소였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은, 통일 신라 시대 연못과 정원이었..
2019.03.09 -
고분 사이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 유적 사이를 거닌다는 것: 고분군 걷기 고속버스의 자동음이 도착을 알리기 전에 이미 창 밖으로는 거대한 고분들이 나타난다. 이집트를 여행하던 시절 멀리서 피라미드가 보이고 수많은 자동차들의 클락션이 겹치면, 자다가도 '아 카이로에 도착했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경주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 풍경, 고분이라는 이름표. 경주라는 일종의 생활세계에 대해서, 고분이나 유적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완전한 서술에 도달할 수 없다. 그 서술에는 현재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며, 아주 파편적으로만 유적과 동시대를 겪지 않는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자들이 경주를 찾게 되는 것은 (아마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 때문일수도 있지만) 천여년..
2019.02.27 -
프롤로그: 왜 경주였을까?
0. 오랜 기억,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은 파편화되거나 부스러지기 마련이다. 의 기억 저장고처럼 대부분의 기억들은 불러낼 수 없는 지점으로 흘러내려가서, 무의식이라는 어떤 덩어리가 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라면 한 번쯤 가게 되는 경주에 대한 기억들도 대부분 이런 지나간 기억의 덩어리가 되어서, 아무리 애써도 규명할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하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 잃어버린 기억이 얼마나 되는지도 셀 수 없다. 그저 '아 불국사 갔었어' 혹은 '천마총 안에 천마도 같은게 있었는데 꽤 으스스했던 것 같아' 정도만 떠올랐다. 가족 여행으로도 최소 한 번은 갔었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어린이 캠프에 참여해서 일주일 정도 자전거 여행을 했었는데, 그 사실 이외에 어떤 세밀한 사실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
2019.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