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

2018. 7. 30. 00:28짧은 생각들

엄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된 하나의 글로 구성하는 것은 아마 먼 훗날의 일일 것 같다. 나는 아직 엄마와 나 사이의 일들을 돌아보고 차분히 정리할 자신이 없다. 그에 필요한 차분함과 정적인 감정은 아직 나에게 가능하지 않다. 언제쯤 슬픔 없이 엄마를 떠올릴 수 있게 될까?



-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식사를 할 때마다 여행 다큐를 보시는 것은 엄마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의 휴식처였던 것 같다. 덕분에 동생과 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오프닝 음악을 외우고 종종 따라부르고는 했다. 엄마는 특히 자녀와 함께 하는 배낭여행에 로망이 있으셨는데, 동생과는 스페인에 다녀오셔서, 결국 아들과 가는 여행은 현생에는 이루지 못하셨다. 아들과 엄마가 함께 배낭여행을 다녀 와서 쓴 여행기를 열심히 읽기도 하시면서 내게 나중에 같이 여행을 가자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내가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된 것은 사실 엄마의 영향이 컸다. 어른이 되고 처음 해외 여행을 간 것은 유럽 배낭여행이었는데, 나는 집안의 가정 형편도 그렇고 여행을 그렇게 원하지 않았었다. 엄마는 거의 반 강제로 예약을 진행하시고 나를 유럽으로 보내셨는데, 당시 나는 출국날 아침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비행기 내내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다녀와서도 그 때 일로 몇 번 싸웠었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없는 살림에 보내줬더니 딴 소리를 한다는 마음이셨을 거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군 제대 직후 어머니가 보내주신 터키-이집트 여행부터였다. 낯선 곳에 가서 뭔가를 경험하는 것을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고, 나이 들기 전까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동남아도 발리를 시작으로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행을 미친듯이, 방학이 될 때마다 나갔는데, 되돌아 생각해볼 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그 이후에 생활이 정돈되지 않아서, 방황하고 싶지만 일상을 감행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내게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여행을 가길 원하셨을거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엄마 대신에 여기저기 다녀본다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에, 그렇게 다녔다. 엄마가 원하던 아들의 모습으로 앞으로도 살아가고자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러 경험을 해 보고 성장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생각했다. 엄마가 원했던 아들은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그렇게 성장해갈 아들의 모습이었을텐데, 이정도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아들은 원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처지에 너무 과하게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여행이 줄 수 있는 의미도 퇴색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가 원하는 아들은 여행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여행을 통해 더 나은 목적을 향해 가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래서 8월의 가족 여행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  사실 엄마는 내 삶의 준거점이셨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인정 받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고,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좋은 분이셨고, 내가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마의 응원 속에서 공부를 직업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가 안 계시고 난 뒤에 공부 할 의욕이 사라진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끌어주던 동기이자 목적이 상실되어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고 있는 지가 3년이 되었다. 내가 이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힘은 일상의 관성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생전에 엄마가 내게 이야기했던 것들, 내게 바라셨던 것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던 것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살고자 늘 다짐한다. 그러나 그걸 봐주고, 내가 안겼을 때 내 등을 감싸줄 엄마는 더 이상 나와 같은 세계에 계시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감정 상태가 계속될지 모르겠다. 사실 조금은 무섭다.



- 엄마 1주기였던 것 같다. 정토회에서 추모제를 지내는데, 슬픔을 멈춰야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간다고, 내가 엄마를 너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들었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닌데. 

   지나간 기억들은 특정 감정의 색채와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 감정도 섞여 있지 않은 기억은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있었던 대부분의 기억이 비록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슬픔과 좌절 후회로 덮여 있는데, 언제 나는 슬픔이 없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이 슬픔의 기억이 극복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뒤로 하더라도, 이 문제가 극복의 범주에 해당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리 슬프지 않게 엄마를 떠올릴 수 있게 되겠지만 그 시간이 오는 것이 두렵고 아프다.



- 종교도 없고 사후세계도 믿지 않아서, 그래서 엄마를 장례식에서 떠나보내는 게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내가 종교를 믿었다면 더 편하게 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안되는 것들이 많다. 이런 면에서는 유물론자 같기도 해서 묘지에도 잘 안 가게 되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기억하려 하는데, 기존하는 제도들 이외의 방식으로 하려니 잘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성실하지도 않게 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나는 엄마를 기린다. 

  사실 돌아올 수 없는 끝을 지나쳤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엄마 없는 세계를 구상하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잘 잡히지 않는다. 시간을 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 길을 지나다가 중년-노년의 여성이 자식들 혹은 손주들과 함께 다니거나 하면 울컥 하고 슬픔이 올라온다.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하셨고, 나는 계속 나이를 먹겠지. 노인의 엄마는 중년의 엄마와 또 다를 것인데 나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엄마를 엄마 뿐 아닌 한 사람으로서 대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는데, 충분히 엄마에게 돌려주지 못한 채로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 어린 시절 철 없던 행동들이 슬픔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더 잘할 걸.



- 오늘로, 사실 열두시가 지났으니 어제인데, 이제 만 30세가 되었다. 30년 전에 엄마 안에서 옆으로 이동하며 나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인정되었는데,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품어주고 인정해줬던 사람은 이제 없다. 나는 점차 나이 든 어른이 되어가는데, 엄마는 50대 후반의 모습으로 계속 내 안에 있다. 엄마와 함께 했으면 더 즐거웠을 생일이지만, 이런 생일도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었다. 슬프게도 아들은 엄마 없이도 잘 살아야 한다. 



- 엄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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