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6. 23:50ㆍ짧은 생각들
-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에 간다는 것 -
1.
한국이 국가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할 때, 종종 등장하는 서술은 "핍박을 견뎌낸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 '견뎌냄'의 내러티브는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를 통해, 언론을 통해, 수없이 재생산되어 우리의 마음 속에 각인된 일종의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 이 견뎌냄에는 우리가 뿌리를 두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에서 타자에 가한 폭력들을 뒤편으로 내모는 힘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견뎌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비가역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모른체 한다. 피해자서사는 종종 피해자의 폭력을 망각한다.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여했고, 그것이 적극적이든 강제적이든 베트남전에서 학살에 깊게 관여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것은 외면되어 오다가 몇몇 연대 활동에 의해 작은 언론들에 실리고는 다시 외면되었다. 최대한 양보해서, 전쟁의 상황은 모든 규범을 무효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에, 그때 그 상황에 놓인 개별 행위자에게,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일개 사병들에게 베트남인을 사살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원죄로 남게 되었다. 베트남의 현대사를 다룬 박물관에 가면 한국군 학살에 대한 기록들이 한국인 여행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정부에서는 종종 베트남에 방문해 사과를 표명하지만, 우리는 한일 관계를 보면서 그러한 사과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역사적 과오는 그 후대들이 그 정체성을 계승하는 한 영원히 갚아나가야 하는 부채다. 최소한 마음 한 구석에는 남아 있어야 하는 과거의 흔적이다. 사과와 치유는 정부 차원이 아니라,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집단적 행동으로 보여질 때 더 의미가 있다. 한국인 개개인이 그 때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반성하고 있는지를 아픔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겉으로는 그들이 '승전국'이며, 우리가 '패전국'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2.
한국군이 체류했던 다낭에서는 최근까지 한국인들을 저주했다고 한다. 가장 많은 학살이, 가장 치열한 전선이었던 베트남 중부 다낭 주변에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류 열풍으로 이러한 분노와 증오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누그러졌고, 한국의 군대를 다룬 태양의 후예가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머릿속에만 있던 '문화의 힘'을 느낀다.
그런데 동시에 베트남 인들은 수 많은 한국 여행자, 단체 관광객들을 본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여행이 '핫'하다. 동남아 중에서 그나마 가깝고, 바다와 리조트가 있고, 물가가 저렴하며, 사람들이 순박하다는 이유다. 가족 단위, 친구들, 개인 여행자들이 비행기를 가득 채우고 하노이, 호치민, 다낭, 나트랑으로 들어온다. 가장 인기가 좋은 다낭과 호이안 거리에는 다른 외국인들보다 한국인이 더 눈에 띈다.
여행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이 속한 나라를 대표한다. 한국인 한 명이 저지르는 이들은 한국 전체를 대표할 수 없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반복하는 실수들은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반복적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 확증은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편견을 생산할 정도로는 강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 현지인들과 마주하면서 보여지는 태도는 이들에게 한국인이 베트남인들에게 갖는 태도에 대한 상을 만들어낸다. 한국인들이 베트남인에 대해 갖는 태도가 다시금 베트남인들의 머리속에서 재현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쉽게 한국인들 일반이 베트남에 대해 갖는 태도로 전이된다.
3.
베트남에 가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인에 대한 하대의 태도를 의식적으로 동반한다고 보는 것은 과한 주장이다. 다만 이는 동남아인들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는 태도를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경제력은 권력이다. 한국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돈 없는 이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동남아 출신 이들은 모두 이러한 시각에 포함된다. 한국에서 명동이나 강남에 있지 않다면, 동남아 인들은 그저 '외노자'나 '결혼이민자', 나아가 '불법체류자'로, 혹은 치안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들로 인지된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인들이 그들의 터전에 잠시 머무를 때도 반복된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타인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쉽게 권력 사용에 물들게 한다. 요구가 쉬워지며, 자신의 요구가 거부되었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화를 내게 된다. '내가 높으신 분인데' 라는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운동한다.
이 마음은 그 자체로 부정의하지만, 베트남에서는 더더욱 경계되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부채를 인지한다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미안함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국인들이 정도의 차이일뿐, 이러한 마음을 모두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개인의 부덕이 아니다. 돈의 사용이, 경제적 구조가 그러한 마음을 아주 쉽게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당연시하고 내보이는 것은 당신의 부덕이다.
4.
여행자의 책무는 그 사회적 맥락 속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리조트 수영장에서 몸만 담그고 오는 것은 그 지역에 간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저렴한 가상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그들의 맥락에 발만 담근다 하더라도 우리 몸에 지는 얼룩은 우리 과거의 과오다. 우리는 우연히 경제력이 좋은 현대 한국에 태어났고, 그 우연성 때문에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리는 무시나 하대의 태도는 정당한 권리의 영역을 넘어 서 있다.
분명히, 행위자에게 과도한 도덕적 의무는 무기력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가 베트남에 갈 때마다 그들에게 사과하거나,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거나 그러한 주장들은 좋은 의도를 갖고 있으나 개별 여행자에게는 과도하다. 다만 우리는 끊임 없이 우리의 '한국인임'을 인지해야만 하며, 우리에게 우연히 주어진 경제적 지표들을 가지고 지나치게 으스대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베트남 전역에 전시된 한국군 학살의 증거들을 잊지 말고 목도하는 것 까지.
5.
물론 이러한 인식을 부정하면서, 리조트와 휴식을 위해, 싸고 맛있는 음식들만을 위해 베트남에 가는 이들도 존중받을 권리는 있다. 그들이 맥락을 걷어낸 반쪽짜리 '관광'을 하는 것도 그들의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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