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7. 01:30ㆍ짧은 생각들
이번 주 목요일, 그러니까 바로 이틀 전이 어머니 1주기였다. 1주기는 음력으로 한다 했다. 강화에서 천도재를 지냈다. 15년 전에 귀농을 선택한 어머니는 종종 내게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 하셨다.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모여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재를 지냈다.
재를 마치고 정토회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냐 물어보셨다.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하는 것은 내게 아직 어려운 일이었다.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차근 차근 되돌아보기에는 아직 안정을 얻지 못했다. 내 대답을 들은 정토회 분은 걱정스럽게 말씀하셨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셨네요.. 1주기 천도재는 잘 떠나보내기 위해 지내는 거에요. 힘들겠지만 잘 떠나보내셔야 됩니다.."
1년을 정신 없이 보낸 것은 아마 어머니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했다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1년 동안 거의 매일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변수가 어머니와 우리 사이에 이별을 겪게 했을까? 좀 더 따뜻한 지역에서 사셨으면 건강하셨을까? 일 안하시고 본인이 좋아하시던 여행을 많이 다녔다면 건강하셨을까? 관 삽입 시술이 잘못됐던 걸까? 좀 더 다양한 민간요법들을 해볼 걸 그랬을까? 나는 아직 납득할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평생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었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 것 같다. 2월 1일에 어머니의 발병을 알았고, 4월 26일에 돌아가셨다. 세 달도 안되는 시간동안 나는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해드리지 못했다. 나는 굉장히 무력했다. 좋다는 음식을 해드리고, 밤새 어머니 옆에 뜬눈으로 어머니를 관찰하고, 새벽에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혹시 어머니가 그 동안 돌아가신 건 아닐까 두려워했다. 어머니가 호스피스에서 마지막 숨을 쉬실 때 내 무력감을 절정에 달했다. 아무 것도 내가 할 수 없었다.
어떤 이별이든 그렇겠지만, 이별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앞에 놓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자기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나는 그게 잘 안됐다. 1년이 지나도 종종 그 때의 기억들이, 슬픔이 덮친다.
2년 전에, 사랑하는 이들을 갑작스레 잃은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도 나처럼 납득하고 싶을 것이다. 뭐가 잘못됐길래, 그렇게 됐어야 했냐고. 왜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냐고. 멀쩡한 배가 침몰했는데 왜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냐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물음들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노란 리본만 올려도 "정치글 올리지 말죠" 하는 댓글이 달리는 요즘이다. 총선을 "승리"했다고 말하지만 누구의 승리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것은 그들의 물음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보다 어쩌면 더, 떠나보내지 못하는 슬픔이 더 크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돌아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슴에도 묻지 못했다.
망각이 슬프지 않은 때가 왔으면 좋겠다. 노란 리본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봄은 대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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