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7. 00:16ㆍ짧은 생각들
박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직 박사가 되지 못한 이가 던지는 질문이기에 지금의 나는 이에 대해 완벽하게 답할 수 없다. (애초에 이 문제에 '완벽한 답'은 가능한 것일까?) 그러나 논문을 애정 어린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면서 몇 가지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놓는다.
- 어쩌다가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처음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박사가 되자!'고 결심했던 것은 아니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연구자'의 삶을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공부라는 도구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공부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러한 동기부여가 더 컸다. 실천철학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어영부영 석사를 마치고, 박사 진학을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 '타자와의 만남'이라면, 여기서도 타인에 대한 윤리가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여행의 풍경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재주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실존적 고민을 논문 주제에 담아내보기로 했다. 이제 박사 논문의 작업은 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에서 마주했던 거대한 문제 중 하나에 답을 내리는 과정이 되었다.
- 연구자로서의 삶
돌이켜보면, 내게는 동기만 있었지, 내가 선택한 이 삶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물론 추상적인 스케치만 있을 뿐이다. 그치만 요즘은 그 삶이 내게 조금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자는 평생을 읽고 쓸 뿐 아니라, 연구를 발표하고 타인에게 평가받으며, 자신의 성과와 기여를 인정받아야 한다. 연구자에게는 인정이 밥줄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작업을 하는 이는 혼자서는 연구자일 수 있겠지만, 학문공동체에 기여하지 못하는 이가 된다. 전공 분야가 거대한 기계장치라고 한다면, 내 작업은 잘 갈아낸 새 톱니바퀴로, 혹은 한 줌의 나사로 기여해야만 한다.
- 박사?
박사는 이러한 연구자로 인정받는 첫 단계다. 또한 이는 하나의 선언이다. '나는 이제 학계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 이름을 통해 비로소 직업 연구자가 된다.
동시에 박사는 하나의 세부 분야를 잘 알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그에 대해 물었을 때, 박사의 머릿속에는 논의의 네트워크가 빛나야 하고, 적절한 표현과 개념어로 청자의 요구 수준에 맞는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접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앎 또한 가져야 한다.
- 될 수 있을까?
논문을 작성하다 보면 읽어야 될 논문이, 내가 따라가야 하는 논쟁사가 산더미임을 알게 된다. 심지어 이는 끊임없이 생산 재생산되어서, 내가 하나를 읽으면 두 논문이 따라온다. 박사 논문은 이러한 논문의 연쇄를 적절히 끊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수 많은 선행 연구들과, 내가 무엇인가 이 논쟁사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를 압박하는 중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논문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어떤 물질성과 연결되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내가 아는 것을 재현하기도 어렵고, 말과 글로 구성된 것이다 보니 그 타당성이 약한 근거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좋은 연구자가 된 선배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이 싹트는 중이다.
사실 이 글을 쓸 시간에 한 줄을 더 읽고 한 문장을 더 쓰는 것이 더 이로운 일일 터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맥주를 먹었으니 내일의 나에게 박사'ing'을 미룰 것이다.
내년에는 그것이 실질적인 이름이든 그저 글자의 조합뿐인 이름이든 간에, 박사가 되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