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21. 10. 16. 01:57짧은 생각들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를 그럭저럭 좋아하는데,
내게 최고작은 <너의 이름은> 이다.
이 영화는 ‘구원’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이를 구원하고자 내달리는 그런.

처음 볼 때는 세월호가 겹쳐 보였다. 재난이 있고 사라진 이들이 있는데, 주인공은 과거와 닿음으로써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자 매우 애를 쓴다. 그리고 결국 구원은 실현된다.

두 번째 볼 때에는 엄마 생각을 했다. <너의 이름은> 작중에서 주인공은 특정 시점에 가서 미래를, 현재를 바꾼다. 모든 사건에는 그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사전의 계기가 있는 법이다. 엄마를 보내고 후회가 가득했을 때, 시간을 너무나 돌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것이 눈물을 불러왔다.

어제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또 생각을 했다. 시간을 돌리고 싶은 시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호동이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정도 전부터 컨디션 저하를 보였다. 늘 즐겨 먹던 음식들도 냄새만 맡거나 맛만 조금 보고, 종종 토하고, 대다수의 시간을 누워 있었다. 어릴 때부터 토하는 일이 잦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입맛이 없나’ 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제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시원한 곳에 가서 잠을 잤던 것 같았다. 그래도 만져주면 골골대고, 목소리도 잘 나와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연휴가 껴 있어서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자연스레 미뤄졌다. (이ㅡ때 24시간 병원에 갔어야만 했다) 밥을 잘 못 먹은 기간이 길어져 병원에 데려갔을 때는 이미 상태가 안 좋아진 후였다.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을 발견한지 거의 일주일만에 나는 호동이를 떠나보냈다. 그치만 하루 이틀이라도 일찍 갔다면 호동이는 입원을 거쳐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후회가 가득하다. 노묘의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주지 못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을 테지만.. 며칠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응급 조치를 통해서라도 나는 호동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상실의 슬픔에 더해 자책으로 괴로운 이유다.

집고양이는 자신이 알아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집사에게 매우 의존적이다. 특히
건강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호동이의 구원자가 될 충분한 자리에 있었음에도 후회하는 자가 되어버렸다. 삼일만 돌리고 싶었던 시간이 일주일 열흘로 길어졌다. 시간이 지나가고 가능했던 구원은 함께 멀리 밀려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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