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4. 23:23ㆍ짧은 생각들
6월 말에 도쿄에서 열리는 대학원생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어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지난 학기 페이퍼를 바탕으로 조금 더 예리하게 다듬어볼까 하다가, 새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새 글을 만드는 중이다. 이번 발표의 주제는 (박사논문의 서론이 되면 좋을 텐데) 'home'이 왜 철학적 문제로 고려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한 쪽에서는 home을 낭만적으로만 바라보거나 어떤 전통적이고 보수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장치라든지 억압적 도구, 해체되어야 마땅한 어떤 것으로 본다. 이 사이에서의 작업은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모두에게나 좋은 집'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최근에 내가 갖고 있는 물음이다.
다섯장 짜리 짧은 글에 이것 저것 담으려니 그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름 완성된 초고를 퇴고하려니 더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사회적인 것들을 다루고 비판하는 철학적 작업은 진단인 동시에 치유를 목표로 한다. 곧 이는 일종의 사회적 병리학Sozialpathologie인데, 의료에서도 그렇듯 진단과 치료는 날카롭게 특정 지점을 제대로 파고들어야 한다. 내 글을 다시 읽고 나서 나이브함에 화가 났다. 지나간 논문들에 약간의 코멘트를 덧붙이는 건 나에 대한 예의도, 그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그래서 정확히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지? 이 문제가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나? 이런 문제를 지적해서 사회적인 문제들이 정말 해소될 수 있을까? 하는 자책들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종로를 걸으면서 머리를 조금 비워냈다. 다시 채우려면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잡스러운 것들을 비우고 생산적인 것들을 담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