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사이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2019. 2. 27. 09:40여행/2019 경주


- 유적 사이를 거닌다는 것: 고분군 걷기








고속버스의 자동음이 도착을 알리기 전에 이미 창 밖으로는 거대한 고분들이 나타난다. 이집트를 여행하던 시절 멀리서 피라미드가 보이고 수많은 자동차들의 클락션이 겹치면, 자다가도 '아 카이로에 도착했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경주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 풍경, 고분이라는 이름표.


경주라는 일종의 생활세계에 대해서, 고분이나 유적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완전한 서술에 도달할 수 없다. 그 서술에는 현재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며, 아주 파편적으로만 유적과 동시대를 겪지 않는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자들이 경주를 찾게 되는 것은 (아마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 때문일수도 있지만) 천여년의 시간을 견디고 서 있는 그 유적들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격리되어 있지는 않다. 현실의 삶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경주 시민들의 삶에 그러한 세계가 녹아 있으면서, 시내를 무심코 걷다 보면 유적에 도달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독특한 조화는 경주가 아니고서는 없다. (견문이 좁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확실해 보인다.)


앞선 글에서 나는 죽음 혹은 상실이라는 주제로 경주여행을 규정했는데, 이 목적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이 고분들의 일종의 쓸쓸함 혹은 시간성이리라. 굳이 왕족의 봉분만을 귀중하게 보존해야 하냐는 계급적 관점을 잠시 멈추면, 죽음에 대한 어떤 경외가 눈 귀 코로 들어온다.  죽음은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저항할 수 없는 절대성으로, 그래서 부드럽게 수용해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반대로 죽음을 겪고도 살아가야 하는 주변인들에게는 죽음과 함께 사는 법을 요구한다. 


나를 집사로 두고 있는 두 고양이가 종종 물어뜯는 세월호 리본은 얼마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가방에서 어떤 마찰 때문에 떨어져 버린 듯 싶다. 나는 세월호가 우리 사회가 겪었고, 또한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죽음의 사건임을 생각한다. 유족들의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슬픔과 정치권의 무관심, 사회 구성원들의 모욕과 연대성의 파괴 등 다양한 사건들은 모두 어떤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분유한다. 유족들의 슬픔을 나는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죽음은 위로받아야 하고, 또한 그들과 나는 함께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올해면 4년인데, 나는 3년째가 되어서야 죽음과 함께 사는 법에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왜 조상들이 (외부적 시선에서는 그토록 고되기만 한) 3년상을 치루는지를 알았다. 죽음은 애도되어야 하지만 그 속에서 절망해서는 안된다는 교과서적인 말은 내게 모욕적으로 들리기까지 했지만, 이제는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 여전히 슬프지만 그 감정의 구렁 속에서 발버둥치기 보다는 슬픔 어린 눈으로 어머니가 가리켰던 길을 보는 것, 내게는 이제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일 테다.


사랑을 이야기하던 둘 사이에서도 이별의 사건들이 있지만, 나는 이 이별들이 비가역적이라 생각지 않는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사후를 믿지 않는 내게 죽음은 영원한 이별과 다름 없는 것이다. 다만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나는 과거의 시간들을 끊임 없이 절단하고 현재로 되돌리면서 어머니를 계속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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