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0. 15:48ㆍ짧은 생각들

어제는 오랜만에 파주에 갔다.
요즈음 친가 사정이 좋지 않아 친척들이 돌아가며 할머니와 할아버지 케어를 맡고 있다.
최근 건강이 악화되신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고, 홀로 계시게 된 할머니께는 근접한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 가족에서는 일단 아버지가 일주일에 두 번, 1박을 하고 오시는데, 직장일과 병행하니 빠르게 소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도 뵐 겸, 아버지에게 휴식을 드릴 겸, 그리고 유사한 연구를 하는 이로서 돌봄의 책임을 함께 나누기 위해, 홀로 파주로 향했다.
이제는 손주도 잘 알아보시지 못하시는, 식사는 잘 하시나 점점 말라가시는 할머니에 대한 심란함, 돌봄의 개인화에 대한 생각, 돌봄노동에 대한 현실감.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말이 공허할 정도로, 할머니의 어려움과 돌봄의 시급성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많은 감정들이 가득 찼고, 하루를 거의 뜬 눈으로 보낸 뒤 학교에 왔다. 군대에서 불침번을 섰던 기억, 엄마 옆에서 밤새 간호하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할머니에 대한 감정 외에도, 나를 조금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다시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가 떠났을 때, 한국 나이로 57세였다. 물론 더 일찍 세상을 등지는 이들도 많으나, 내게는 몹시 이른 이별처럼 느껴졌다. 법적으로 만 65세면 ‘노인’이 되는데, 엄마는 결국 노인이 되지 못한 채로 먼저 가신 셈이다. 엄마가 꿈꾸었던 ‘멋진 할머니’의 삶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엄마가 떠난 이후 60대 정도의 할머니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엄마는 어떤 할머니가 되었을까? “할머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여성이면서 노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는 시간을 버텨낸 이들에게 붙는 이름이다. 또 하나는 ‘자식의 자식’이 혈연으로서의 할머니를 부르는 말이다. 엄마는 안타깝게도 두 가지 모두 되지 못했다. 엄마는 은퇴할 나이가 되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언제나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름의 멋진 삶을 꿈꾸셨던 것 같다. 한때 맑시스트였던 시절이 무색하게, 엄마는 가족이 중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는 종종 ‘며느리’가 오길 기다리셨는데, 엄마는 본인의 시어머니에게는 그리 좋은 며느리가 아니셨으나 (운동권이었던 어머니와 전통적인 규범을 내면화한 할머니 사이에는 꽤 다툼이 많았다) 엄마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당시 애인과 인사를 드린 적 있다. 엄마는 몹시 반가워하시고, 그 아이의 손을 꼭 잡으셨다. (그리고 1년 후에는 이별이 왔지만)
지금도 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런 걱정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이가 안좋으면 어쩌지? 내 배우자와 엄마가 갈등을 겪으면 어쩌지? 엄마가 나중에 치매가 와서 나를 못알아보면 어쩌지? 엄마가 나중에 요양병원에 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사치가 된 걱정들이다. 암은 엄마의 미래를 가져갔지만 동시에 엄마와 함께하려던 나의 미래도 가져가 버렸다.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만약 건강하게 더 살게 되어 엄마의 나이를 넘어서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 주는 엄마의 기일이다.
용인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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