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2일 글.

2017. 1. 7. 01:24짧은 생각들

페북에서 가져온 글.


수능 이후는 논술 시즌이다.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을 비우고 생활비(혹은 용돈)을 버는 시즌. 매년 그랬듯이 나도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는 고민 없이 학원에 나가게 되었다.

학원이 분당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인 것은 버스에 내리고 나서야 알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는 엄청난 조기교육이었던) 원어민 학원 원더랜드에 다녔던, 그 건물이었다. 1층에는 버거킹과 KFC가 나란히 붙어 있던, 그 건물.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나는 21살을 더 먹었으니, 도대체 버거킹과 KFC는 얼마나 오래...) 이 건물에서 10분 20분 걸으면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다녔던 초등학교, 종종 갔던 이마트가 나올 것이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1층 버거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며 자다 깨다 해서인지 아무 생각 없이 햄버거를 흡입하고 학원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대면 첨삭을 마치고 다시 내려왔다.

8살의 기억은 20년동안 먼지가 되었다. 원어민 학원에 다니다 할로윈 파티 때 주머니 없는 바지를 입고 가서 사탕을 조금밖에 받지 못해 억울했던 기억, 교통사고 때문에 얼굴에 큰 상처가 났을 때 걱정해주던 원어민 교사, 그 밑에 버거킹에서 내가 주문한 감자튀김을 다른 아이가 가지고 튀어서 화가 났던 기억, 그런 사소한 기억들만이 남아있다. 8살의 나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었겠지만.

집에 가려고 버거킹을 다시 지나다가 생각이 났다. 어머니와 버거킹에 자주 와서 햄버거를 먹고 갔던 기억. 다른 사소한 것들은 기억하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버거킹까지 걸어서 어머니와 햄버거를 나눠 먹고는 했다. 비록 다른 아이가 가지고 갔지만 그 때 주문했던 감자튀김도 어머니와 나눠 먹고자 샀던 것이었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매형은 내게 삼년이 걸린다 했다. 일상에서 슬픔을 마주하지 않고,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시간. 나는 아직 1년 반, 그러니까 절반 밖에 보내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어머니의 흔적들을 마주하고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슬퍼한다.

슬픔 없는 그리움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늦지 않게 왔으면 좋겠지만 너무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머니는 햄버거 중에 버거킹이 가장 맛있다 하셨다. 다음 성묘에는 하나 가지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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