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컨퍼런스 후기.

빈, 2019. 7. 3. 23:20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도쿄대학교 철학과가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지난 겨울 방학에 모집 공고가 떴고, 올해 초까지 발표 초고를, 5월까지 원고를 제출하는 일정이었으니, 거의 1년의 전반기가 이 컨퍼런스 준비와 함께 흐른 셈이다. 비록 이번 학기는 단 하나의 수업만 수강했지만, 컨퍼런스 준비와 조교 일까지 더해지니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여튼, 그렇게 준비했던 컨퍼런스 참석이 마무리되었다.

 

느낀 것들이 많다. 일기를 쓰지 않아서 많이 희석되고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몇 가지를 적어둔다. 두세 가지 키워드로 나눠볼 수 있겠다.

 

 

1. 자괴감

 

올해 들어 자신감 있게 무엇을 했던 적이 없다. 수업 시간에 발제를 하면서도 종종 머리가 새하얘지고는 했다. 안타깝게도 컨퍼런스에서도 종종 그랬다. 극심하게 긴장을 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이 긴장이 준비의 부족에서 온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 준비했는데, 역시 부족했던 걸까? 혹은 내가 가진 성정이 어쩔 수 없는 소심하고 간이 작은 사람이어서일까?

 

나는 컨퍼런스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다른 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지는 못했다. 내 발표에는 친분이 있는 몇몇 동료들과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해주시는 교수님 두 분이 오셨다. 외국인 학생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발표 자체는 무사히 끝났지만 갑작스럽게 긴장이 되어 쉬운 문장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낯설어할 주제다보니 쉽게 쓰고자 했다. 그러다가 글이 너무 나이브해졌고, 그러한 지점들이 비판으로 들어왔다. 질문은 계속 들어오는데 어린 아이처럼 웅얼거리고 말았다. 

 

다른 이들의 발표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질문을 보태지 못했다. 영어의 두려움도 있었고 다른 전공분야에 대한 낯섦도 있었다. 조금 더 자신있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영어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 나 대신 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 내가 그 혹은 그녀의 기회를 박탈한 것 같아서. 32살이나 먹고 잘 하는게 왜 이렇게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2. 영어공부

 

그래서 가장 절실하게 생각한 것은, 영어공부가 시급하다는 진단이었다. 사실 이미 조금 늦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확실히 어학을 배우는 재능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했었어야 했는데, 나는 왜 철학과 대학원에서 영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무엇을 하더라도 영어가 중요한데 말이다.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고, 토론에 임하는 것이 철학에 있어서 주요한 조건인데, 어학의 장벽이 있으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이제라도 영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겠다 생각했다. 설령 내가 학업을 중단하더라도 내게 좋은 무기가 되어줄 것이니까.

 

다른 학교 학생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파티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건 두고두고 아쉽다. 

 

 

3. 학업의 자극

 

다른 이에게 많은 것을 주지는 못하면서, 나는 몇 가지를 얻어왔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이 그 중 가장 값진 것이었다. 대학원생 컨퍼런스였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의 발표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준 높은 논의들이 있었다.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준비해온 것을 선보였다.

 

나는 내가 철학의 대가가 될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교수는 될 수 있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이런 생각들이 내 의지를 스스로 꺾어왔던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해' 라는 생각이 엄마가 내 곁을 떠난 이후 내 주변을 계속 맴돌면서 내 판단들을 규제해 왔다. 이제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가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이만 먹은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