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나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다

빈, 2019. 3. 5. 23:38



0. 


추천을 많이 받았던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과 경주 여행을 함께 했다. 오고 가는 버스에서 조금씩, 숙소에서 조금씩, 카페에서 조금씩 읽고 밑줄을 긋고 생각했다. 책 내용은 기대와 다르게 어떤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영화 칼럼들의 모음이었다. '정확'한 '사랑'과 '실험'이라는 세 가지 포인트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는지가 매우 궁금했는데, 각각 자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평들도 좋았지만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끝내 뭔가 해소되지 않는 기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신형철은 이 제목에 대해 책머리에서 장승리의 시를 빌려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15쪽)


그러니까 신형철은 이 '정확한 사랑'을 그 대상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15쪽), '섬세'(16쪽)하게 대상에 접근하고 대상과 교류하고 대상에 대해 해석하는 작업으로 규정하는 셈이다. 그는 그것을 해석자, 혹은 평론가의 권장될만한, 보다 강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의무로 간주한다. 결국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평론가 자신이 수행한, 그 대상(영화)들에 대해서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가장 적절한 해석이라는 시도의 집합이다.


나는 이 동일한 표현을 이용해 다른 이야기, 어쩌면 내가 그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일 그 이야기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1. 


나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애정결핍의 적실한 사례였던 것 같다. 지금 통용되는 폭력비판의 관점에서 떠올려보면, 어머니의 훈육 방식에는 다소 폭력적(?)인 면들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충분히 사랑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허락해주셨고 응원해주셨으며,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많은 부분을 직접 구성해주셨으니까. 그럼에도 돌이켜볼 때 나는 애정결핍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외로워했고 사랑을 기원했다.


아마 이성애자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사춘기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것 같지만, 연애라는 개념은 중학생이 되어서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몸에 맞지 않는 큰 교복을 입었던 14살의 나는 교복처럼 큰 꿈을 품었는데, 그것은 좋은 연애였다. 연애는 어느 순간 삶의 목표로서 기능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목적에 따라 나는 몇몇 이들에게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금방 좌절되었다. 나는 통통하고 안경 쓴 '범생이'이며, 타지에서 와서 토박이의 1등을 강탈한 그런 불순한(?) 아이였으니까. '학창시절에 연애라는 것을 해보겠어!'했던 중1 어린 나이의 결심은 그 성취를 중2, 중3...주욱 흘러가 고3때까지 미루게 되었다. 


연애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풋풋한 첫사랑 같은 것은 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이라고 규정할만한 사람을 만났다. 같은 학교도 아니며, 교육청 프로그램에서 잠깐씩 만났던 우리는 제법 애틋했고, 내가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어설픈 연애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관계를 '연애'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문자와 전화로만 이어졌던 그 연락들 이후에 한 번도 연인으로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의 스쳐감이었지만 생각보다 첫 사랑의 여운은 계속 갔는지, 어영부영 친구 사이로 지내면서 종종 얼굴을 보기도 했지만, 대학 생활을 하는 중에야 깔끔하게 잊을 수 있었다. 


십대의 연애는 결국 실패를 맞고 나는 20살이 되었다.





2.



20대의 나는 조금 다른 실패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과 연인 관계에 상호 동의에 이르렀다고 해서 그 연애가 필연적으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연애가 시작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말해주는 것이 없다. 대학생이 된 나는 많은 연애를 시작했지만 대부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흔히 하는 연애 초보의 실수들이 계속되었고, 학교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법도, 남을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좌절과 실패는 종종 기준을 높여 더 큰 좌절과 실패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몇 차례의 좌절 이후에 나는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아무리 마음이 통한다 해도 다른 지향들, 조건들이 잘 맞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는 사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한 번에 영원을 약속하는 관계에만 진정성을 부여했고, 그것이 완벽한 사랑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집착은 오히려 연애의 지속을 방해했는데, 이 집착이 둘이 함께 쌓은 사랑이라는 건축물보다 그 건축물의 작은 균열들에 집중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이었던 이 즈음부터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다. 인생영화는 대부분 오독에 기원을 둔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물론 다양하게 갈릴 수 있지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은 기억 때문이 아니다'라는 운명론적인 관점에 붙잡혔다. 영화는 어떤 조건이나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운명이 로맨틱함에만, 내게도 그런 인연이 있을거라는 생각에만 집중했다. 영화는 균열에 집중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나는 영화를 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대학 이후에 꽤 여러 번의 연애를 했지만 누군가를 금방 좋아하고도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던 건, 저 '완벽함'이 나 자신을 괴롭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 뿐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이들까지 괴롭힌 셈이다. 악의가 없는 노력들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이 바로 내 이야기임을 반성적으로 알아채지 못했다. 정치적 관점, 삶의 지향, 미적 감각, 윤리적 입장 등 꽤 많은 것에서 마찰음이 났고, 나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덮어두지 못하고 균열을 마주했기 때문에 결국 많은 연애들이 끝나고 말았다.


물론 이 관계정립의 시도들이 무의미했고, 실패로만 남아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 과정이 지나고 소중한 관계를 상실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성숙해졌고 겸손해졌다. 주어진 인연들에 감사한다. 모든 것이 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함께 다른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손잡음'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비혼주의자였던 나는 이제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결혼을 선택하는 사랑의 힘과 용기에 경외감을 느낀다. 이런 생각을 갖고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의 불가능성은 너무나 자명하고, 나는 후회와 반성을 안고, 주었던 상처들에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





3.


알레테이아. 철학에서 진리는 전통적으로 탈-은폐를 의미한다. 그 대상이 인지되지 않고 은폐하여 있다가, 관찰자 혹은 사유하는 이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앎, 이해란 그 대상이나 사물이 가진 고유성을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수행이어야 한다. 이는 해석자의 자의적 판단보다 그 대상을 온전히 드러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집착해왔던, 그리고 다행히 몇년 전에 포기한 그 '완벽한 사랑'은 상대가 가진 고유한 의미들을 가려버리는 검은 안대였다. 나는 편협하고 자의적인 기준들로 상대를 바라보고, 그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쌓여가는 시간과 공간의 격자를, 경험을, 관계의 지속을 마음 깊이 간직하지 못했다. '완벽' 때문에 나는 완벽한 관계를 꿈꿀 그 토대조차 갖지 못했다. '함께' 어떤 것을 꿈꾸고 그것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완벽'은 관계를 망치는 독약이다.


신형철의 의미와는 다르지만, 나는 이제 '정확한' 사랑을 꿈꾼다. 가장 정확하게, 상대가 가진 고유한 그녀 자신을 사랑하는 그러한 사랑을. 완벽보다는 정확을. 여전히 내게 완벽한 사랑의 믿음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오직 정확한 사랑 속에서만 그러하다. 나는 믿는다. 정확한 사랑이 성취된다면 긍정적인 의미에서 '완벽한 사랑' 또한 도래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