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7 다낭

베트남 여행 5일차 - 여행의 마지막 날.

빈, 2017. 7. 20. 21:04

박사 첫 학기가 조금은 소화하기 힘들어서, 블로그를 하는 것은 소화불량을 유발할 터였다. 

때문에 이제야 적는다. 다낭 여행 마지막 날.

밤 비행기여서 하루 종일 다낭 시내를 돌아다녀야 했다.




호이안과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으러 갔다. 숙소 옆에 택시들이 많았는데,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잘 없다는 녹색 마일린 택시를 발견했다. 다가오는 기사님에게 무조건 미터기로 가 달라고 했다. 기사님이 큰 택시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큰 택시가 요금이 더 나온다는 말이 기억났다. 무서워서 계속 미터기를 보면서 갔다. 







다낭에 오면 한 번 씩 꼭 들른다는 콩 카페. 관광지로 유명한 카페 대다수가 특별할 것이 없었던 경험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코코넛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좀 많이 달기는 했지만. 한국에 와서도 코코넛 커피를 찾아 다니고는 했다. 라X킹에서 파는 것이 가장 비슷한 맛이었던 듯.






여행 첫 날 숙소 근처라서 울타리 밖으로만 슥 보고 후에로 갔었던, 다낭 성당에 갔다. 독특한 색감이긴 했는데, 날씨 때문인지 보정이 없으면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든다. 블로그에서 본 다른 사진들은 한껏 색감 보정을 거친 작품들이었던 것 같다. 랜드마크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많긴 했는데, 오래 볼 곳은 아니었다. 하노이에서 봤던 성당이 더 좋은 인상이었던 기억.








다낭 참 박물관. 전시되어 있는 석상들보다 박물관 주변을 둘러 싼 정원이 더 좋았다. 사학과 석사과정인 친구조차 - 현대사 전공이기는 하다 - 쓱 보고 더 오랜 시간 정원을 산책했다. 베트남은 유교문화권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부에서 남부는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참파 왕국의 유적들은 코끼리가 많았다.




  

독특한 가로등.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다. 베트남 여행이 두 번째, 다섯 번째 도시인데 여행 다니는 동안 공산주의 국가라는 느낌은 잘 없었다. 특히 다낭이나 호이안과 같은 관광지는 이미 상업화된 지역이라 다른 동남아와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과거 미국에 맞서 승리하고, 68세대에게 대안으로 보여지기도 했던 공산주의 국가조차 이미 물이 많이 들었다. 그들이 아직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오직 깃발뿐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친구를 본의 아니게 괴롭히면서, 베트남의 독특한 종교인 까오다이교 사원에 갔다. 까오다이교는 예수 부처 공자 등 다양한 신들 모두를 섬기는 독특한 혼합교인데, 베트남에는 꽤 신자가 있다고 한다. 친구는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친구를 뒤로하고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중부 지방 고유의 음식이라는 분짜까를 먹으러 왔다. 분짜까 109는 까오다이교 사원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분짜까는 일종의 어묵 국수인데, 한국의 잔치국수 느낌이 났다. 하노이에서 분짜를 처음 먹고 문화중격을 겪었어서, 분짜와 분짜까가 유사한 요리인 줄 알았는데, 약간 실망했다. 점심 한 끼 떼울 정도의 맛. 로컬 식당이라 저렴하기도 했다.





이 날 일정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은 다낭 박물관이었다.

1)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고

2) 베트남전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관점을 알고 싶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격전지는 자연히 중부 베트남이었다. 그리고 '용병'과 다름 없었던 수 많은 한국인들이 파병온 것도, 이 치열한 전선인 중부 다낭이었다. 베트남전에 파병되셨던 친조부도 다낭 주변에 주둔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한국군들은 베트남 군인들과 전투를 벌였을 뿐 아니라 민간인들을 학살하기도 했는데, 이 학살들이 다낭 주변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에 중부 베트남인들은 한류 이전까지 한국인들을 혐오했다고 한다. (한류 얘기는 어디선가 주워들었는데 그럴듯하다) 한국인들, 특히 한국 정부는 대대로 한국을 피해자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관념들이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박물관에는 베트남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빠르게 보고 현대사 쪽으로 향했다.





독일에서 보내온 듯한, "승리에 도움이 되는 연대"라는 제목의 서한.






한국군이 사용했던 무기나 장구들, 군번줄(은 요즘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전시를 위해 가져다 놓았나보다) 등을 지났다. 학살이 일어난 마을 등도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는 한국에서 시민단체들이 보내온 편지와 책들이었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이 베트남전에 대해 연설하면서 그것을 자랑스러운 기억 처럼 묘사해서 문제가 되었다. 물론 파병된 그들의 삶에 대해서 경의를 표할 수 있다. 그들이 힘겨운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희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베트남에게 우리는 끝없이 사과해야 한다. 비록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렸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는 언제나 가해자일 것이다. 마치 일본에게 갖는 우리의 감정이 그렇듯이. 베트남이 세계사의 영역 중심으로 조금씩 도약하는 현재는 더더욱 그렇다.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하고자 기념품 샵에 왔다. 관광지의 기념품들은 대부분 조악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 세계 전역으로 팔아넘겼을 법한 마그네틱들이나, 품질이 끔찍한 천으로 만들어진 에코백, 스카프, 전통의상 등등.. 그런데 다낭의 기념품 샵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현금을 다 쓰고 카드까지 긁을 뻔 했지만 용케 잘 참았다. 에코백과 마그네틱 정도로 쇼핑을 끝냈다. 물건은 다낭과 그 근교를 포함해 가장 다양하지만 동일 품목은 호이안이 더 쌌다.






한국인들로 북적거리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식당을 찾아 갔다. 트립어드바이저 평점이 무난했고, 우리의 동선에 맞았다. 그럭저럭 먹을 만 했는데 조금 짰다. 한국 요리가 짜다는 말이 많은데, 아시아 생활권이 공유하는 특징이 아닐까 한다.







다낭의 한 강을 산책하면서 야경을 보고, 마지막으로 콩 카페에 가서 코코넛 커피를 한잔 더 했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한 번 더 먹는거였는데!





그렇게 여행의 일정이 끝났다. 

5일 만에 세 도시를 보는 건 조금 빡센 일정이었긴 했지만,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나오는 건 한숨..

택시를 타고 다낭 공항으로.

호치민 아저씨 안녕!





공항에 있는 외국인 중 80%가 한국인이었던 것 같았다.

한국인 많은 여행지가 싫은 사람은 근 몇년 간 다낭에 오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내가 그렇다.




여행을 마치면 집에 와서 기념품들을 풀어 놓고 사진을 찍고는 한다.

대부분 호이안에서 산 것들.

누군가가 다낭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호이안에 오래 있으라고 할 것 같다.

리조트에서 쉬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다낭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로망이었던 베프와 해외여행가기라는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점,

호이안에서는 무척 좋았다는 점 정도가 이번 여행의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