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에너지
심리적 에너지는 어떤 일을 의욕할 수 있는 자원이다. '나는 무엇인가를 할 에너지가 없어' 할 때, 이는 대부분 신체적 에너지 보다는 심리적 에너지를 지칭한다.
나는 에너지의 용량이 다른 이들보다 작은 사람이다. 속칭 '유약'하다. 그래서 그 일을 몹시 즐기지 않게 되면, 내 에너지는 금세 동나버린다. 신경 쓸 일이 많을 때에도 그러하다. 가족을 챙겨야 할 때나 (혹은 고양이) 처리해야 할 일이 예정되어 있거나, 할 때 지속적인 에너지 사용이 있다. 게임 용어로는 지속 디버프가 걸려 있는 상태다.
5월 중순 이후로 심리적 에너지가 빠르게 동나는 느낌이다. 바꿔 말하면, 원래도 적었던 용량이 더 적어지거나, 혹은 에너지 저장고가 줄줄 새는 느낌이다. 공부에 쉬이 집중할 수 없고,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잉여짓" 들만 쉽게 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논문에 에너지를 많이 썼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졸업을 앞둔 사람으로서 여러가지 맥락 속에 비로소 들어오게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직업인으로서의 현실이라거나, 연구자로서의 삶이라거나.
최근에는 친구 결혼식 축사에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데, 그렇게 엄청 중요한 작업은 아니면서도, 사소하지도 않는 일이어서, 더구나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초고를 두 번 고쳤는데, 짧은 시간 내에 진심을 담아내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편지를 쓰게 되면 서너장이 넘어갈 정도로 장황한 마음을 전달했던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다. 정신 없는 결혼식 당일에 친구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좋은 반응이 나와야 할텐데. 헤어나 옷 입는 것도 조금 고민거리다.
가족들을 챙기는 것도 은근히 에너지가 든다. 최근에는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에 다녔다. 지난 해에 하나를 먼저 보낸 터라, 동생이 신경을 많이 썼고, 덩달아 나도 그렇게 됐다. 아빠도 심장 쪽에 불편함을 느껴 대학병원에 예약하고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계시는 중이다. 이런 큰 '이벤트' 외에, 어떤 반찬을 해서 가족들을 먹일까, 청소는 언제 하지 등등 사소한 신경거리들이 많다. (물론 다른 전업주부들보다는 훨씬 대충 하는 중이다)
조교 일은 오히려 적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신경 쓸게 많지는 않다. 다만 이제 기말 기간이라 채점과 첨삭의 시간이 오기는 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논문 한 줄 쓰기가, 혹은 한 줄 읽기가 조금 버겁다. 읽기는 읽는데, 머리가 안 돌아가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릴, 혹은 에너지가 다시 충만해질 계기가 필요하다.
바다를 보고 와야 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