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글쓰기의 상실

빈, 2022. 4. 7. 13:34


‘글을 못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들을 일이 없다. 글을 타인에게 보여줄 일이 드물 뿐더러, 이러한 발언은 상식적으로 ‘무례’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대학원생 혹은 연구자는 글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직업이며 ‘일’이다보니, 이러한 평가는 ‘할만한’ 말처럼 생각되기 마련이다.

내 글쓰기 ‘스타일’을 잃었다고 생각한 지가 거의 10년이 되었다.

시인이 되고 싶기도 했던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감정적인 글쓰기를 했다.
하나에 몰입해 여러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감정을 글에 쏟아냈다.
‘글을 못 쓴다’는 평가는 들은 적 없었다. 종종 입상도 하고, 주변에서 칭찬도 받았으니까.

이러한 스타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입시를 위해 논술학원에 다닐 때부터다.
첨삭 선생님(그 당시에는 내 미래가 될지는 몰랐던)은 내 글쓰기에 대해 ‘문학적’이며, 이는 좋지 않은 논술이라고 여러 번 지적했다.
논술은 차갑고 딱딱하지만 논리적인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 글쓰기가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난 뒤에 내 글을 낯설게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 글쓰기에 대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줄 한줄 쓸 때마다 동시에 이미 내 글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고 억지로 한 글자 씩 붙이다 보니 글이 엉성해지고 어색해졌다.

대학교 신입생 때에는 <대학국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에게 총애(?)받던 시절이 있었다.
우수 과제라고 여러 번 발표하기도 했고, 칭찬도 여러 번 들었었다.
여러 주제를 다룬 에세이를 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다시 고등학생 시절의 글쓰기를 했던 것 같다.
야망이 다소 컸던 기말 공동 과제를 망쳐서 학점은 아쉬웠지만, 그 수업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글쓰기로 받았던 마지막 칭찬이었을 것이다.

군대를 다녀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다시 혼란을 겪게 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내 문장 구조가 불필요하게 복잡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문장을 일부러라도 간결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또 내 고유한 글쓰기는 희미해져 갔다.

대학원에 온 이후로는 보통 지도교수에게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문장이 좋지 않다는 것이 그의 평이었다.
오늘은 그가 다시 내 글쓰기에 ‘유려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것은, 글이 잘 안써진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쓸 때 생각이 그리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글쓰기 스타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논문을 쓸 때 내가 써야 할 내용이 머릿속에 그리 명료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이런 상황들이 겹쳐서 나는 점점 글을 더 못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어느덧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이 나를 괴롭힌다.

무엇이 문제일까?
글 쓰는 일이 점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