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이별 하기가 어렵다.

빈, 2021. 11. 10. 00:56

고양이가 밥을 먹지 않는 것이 그렇게 큰 위험 신호라고 미처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쓸 데 없는 것들을 보고 보낸 많은 시간 중 한 조각이라도 고양이 건강 정보를 찾아봤다면,
분명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매일 뛰어다니고, 애교가 넘쳐서 나를 귀찮게 하기도 했던 호동이가 어느날부터 밥을 잘 먹지 못했다.
노화인가, 날이 추워서 식욕이 떨어졌나 하고 사료를 바꿔보기도 하고 습식 캔을 주기도 했다.
식욕은 있었는지 한 두 입 먹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게워내었다. 평생 자주 토를 하던 아이라 크게 안좋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열이 있는지 시원한 곳에서 잠을 잤다.
"호동~ 왜 거기있어 일루와~" 불러도 바라보기만 했다.
공교롭게도 연휴가 걸려서 늘 가던 병원이 쉬는 바람에, 이틀 정도 있다가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때라도 24시 응급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그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네 동물병원에 동생과 호동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다.
동생이 "큰 병원에 가보라 한다"고 연락을 주어 급하게 집을 다시 나왔다.
기운만 없는 줄 알았는데.
호동이는 대형 병원에서 심한 당뇨와 지방간, 전해질 불균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수의사는 한달 정도 전부터 당뇨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입원을 시켰다. 힘이 없는 호동이는 울기만 했다. 낯선 곳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아이인데.

다음 날 면회를 갔다.
수치가 조금은 내려갔지만 여전히 위험하다고 했고, 케톤을 배출하고 전해질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케톤 수치가 내려가면 집에서 케어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내가 잘못 이해한걸까? 나는 호동이가 나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
울음이 터졌지만 호동이를 쓰다듬어주고 면회를 마치고 나왔다.
"꼭 나아서 집에 가자"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 다음 날 또 면회를 갔다.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고 했다.
호동이는 면회실에 오면서 집에서 내던 것처럼 큰 울음 소리를 냈다.
상태가 좋아졌다는 생각에 다시 눈물이 났다.
확실히 기운이 있어 보였다.
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며칠만 더 견디자.
늘어가는 병원비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호동이만 나을 수 있다면.
호동이 퇴원 이후를 생각해서 미리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예정대로라면 동생과 같은 날 맞게 되는데, 둘 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호동이를 케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날은 면회를 가지 못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온 몸이 아프고 열이 펄펄 났다.
2차가 심하다던데 사실이었다. 허리디스크도 갑자기 심해진 느낌이었다.
새벽 내내 끙끙대다 타이레놀을 먹고 버텼다.
동생이 대신 면회를 갔다.
영상통화를 했는데,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고 해서 마음이 무너졌다.

기분 나쁜 걱정은 언제나 현실이 되는 것 같다.

그날 새벽 잠들자마자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호동이가 심정지가 왔다고.

동생을 깨워 택시를 타고 급하게 병원에 갔다.
가는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호동이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잠깐 숨이 돌아왔다가 다시 멈췄다고 한다.
응급구조사 분이 한참을 작업했지만
호동이는 축 늘어진 채로 그렇게 있었다.
한참 후에 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순간 오열을 참을 수 없었다.

케톤 수치가 계속 떨어지지 않아서 위험한 상태였다고 한다.
진작 이야기했으면.. 차가운 병실에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싸울 힘이 없었다. 슬픔과 미안함이 나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호동아 집으로 가자"하고
장례 박스에 넣어서 집으로 데려왔다.
호랑이는 자신의 형제 냄새가 나서 그랬는지, 큰 박스가 궁금했는지 근처에 와서 킁킁대다가 동생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향을 피우고
밤새 울고
호동이 앞에서 앉아 있다가
소파 위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향이 꺼지지 않게 계속 불을 붙였다.

차가워진 호동이를 계속 쓰다듬었다.
나의 행복, 나의 유일한 낙이었던
우리 집 귀동이가 이렇게 누워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잠시 울음을 멈추었다가,
박스를 열면 다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집에 영원히 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체는 부패하기 때문이다.
24시간을 호동이 앞에서 보냈다.
밤에는 호동이가 좋아하던 내방으로 데려와서
옆으로 누워 호동이를 계속 바라봤다.
호동이는 내가 누워 있으면
내 침대 위로 폴짝 올라와서
내 얼굴 옆에 누워 골골대고는 했다.
그것이 하루의 일정이었고, 내게는 하루의 위로였다.
이제는 차가워진 호동이가 멀리 누워있었다.

다음 날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요즘은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많아졌다는데,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용인까지 갔고,
좋은 시설과 좋은 대우를 받고
호동이는 재가 되었다.
요즘은 보석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거부감이 들어 하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다.
호동이는 꽃을 뜯어먹는 걸 좋아했는데,
그래서 꽃을 많이 넣어 줬다.

따뜻한 재가 된 호동이를 안고 집에 왔다.
가족 사진들 사이에 놓았다.
며칠 후에는 호동이 사진을 골라 사진첩을 만들고 액자를 만들어 함께 두었다.
실감이 나지 않다가,
고요한 새벽만 되면 현실감이 몰려와 나를 괴롭혔다.
호랑이는 조용한 아이라서, 호동이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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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되었다.

나는 사랑을 박사논문 주제로 삼았음에도 사랑하는 아이의 이별에 무력했다.

사랑은 단지 마음을 다 쓰는 것 뿐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안녕을 위해 힘쓰는 것 또한 포함한다.
나는 전자에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큰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가 내 옆에 오래 있을 수 있도록 더 신경쓰지 못했다.
후자가 전자의 조건임에도 나는 전자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사랑했지만 사랑을 다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 내 행복을 망쳤다는 생각이 가장 괴롭다. 나의 안일함이 사랑을 망쳤다.

이별 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