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뒤쳐지는, 그런 느낌

빈, 2021. 8. 15. 22:58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학부 1학년 때였나, 그때 즈음일 것이다. 사회학 강의를 들으러 갔었는데, 선생님은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외에도, <거울 나라의 엘리스>라는 작품이 있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 속의 어떤 세계는, 전속력으로 걸어야만 제자리에 있게 되는 그런 세계라고. 선생님은 한국 사회가 그런 사회가 아닐까 싶다고, 가볍게 말씀하시고 수업 내용으로 다시 넘어가셨다.

 

알고 보면 꽤 유명한 이야기였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가져다 붙이기 참 좋은 이야기기는 하다. 요즘 내가 그렇다. 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그리고 약간의 무기력증으로 조금 천천히 걷고 있는데, 그렇게 되니 꽤 뒤쳐지고 만다. 연구자가 된 이후에, 직장인 친구들로부터 뒤쳐지는 것에는 익숙해져 버렸다. 친구들은 돈을 모으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집을 사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 살아간다. 종종 밥을 얻어먹을 때에는 미안하고 고마운, 조금은 빚을 지는 느낌은 있지만 뭔가 뒤쳐진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자라는 직업을 함께하는 이들이 나를 앞서 갈 때, 나는 조금은.. 그리고 종종 꽤 많이 불안해진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내게는 조금 이상한 강박이 있는데,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내가 속한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좋은 아들, 좋은 오빠, 좋은 친구, 좋은 애인... 이 '좋은'의 타이틀을 획득하고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한 나는 '좋은' 연구자가 되고자 한다. 앞서의 '좋음'들을 추구하면서 나는 후자가 될 수 있을까? 후자를 택하고 전자를 잠시 괄호 쳐 놓으면, 나는 정말 행복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30대 중반이 되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사실 이런 글을 쓸 시간에 논문을 한 줄 더 쓰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되겠..으나, 생산적인 방향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쪽을 잘 택하지 않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지. 의미 있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끊임없이 택하는 삶,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