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21.08.12
근황.
0. 요즘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은 각자에게 한정되어 있을텐데, 요즘은 논문에 쉽게 소진해버리고 있다. 그렇다고 논문을 하루에 몇 페이지씩 쓰는 것도 아닌데. 점점 텍스트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커지는 느낌이다. 결국 글로 밥벌이 해야 하는 운명인데 한 글자 한 글자가 버겁다. 연구실에 왔는데 공부가 안 되는 김에, 오랜만에 적어본다.
1. 논문 근황
대학원생의 근황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잘 써지지 않는 논문을 어거지로 붙잡고 하나하나 적어내는 것이다. 사실 글 쓰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겹지 않은데, 여러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고 글에 유기적으로 집어넣는 작업이 어렵다. 논문이란 이전의 수 많은 연구성과들 위에 (혹은 옆에) 내 것 하나를 올려놓는 것일텐데, 쉽지 않다. 이 쌓여 있는 과거의 작업들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않으면 나는 그저 하나의 에세이를 쓴 것이겠지. 읽고 쓰고, 쓰고 읽고 한다. 얼마 전에 논문의 구조를 수정했는데, 2022년.. 졸업할 수 있을까?
2. 한 살 더 먹었다.
7월 말에 생일을 겪었다. 이제 생일은 축하하기보다는 ‘겪어내는’ 날에 가깝다. 한 살을 더 먹어 버렸다. 이제는 내가 33살인지 34살인지 헷갈려서 몇 초 계산해봐야 한다. 만 33살이니까 33번째 생일을 보냈다. 많은 축하를 받았으나.. 매년 점점 슬픔의 강도가 짙어지는 생일이다. 친구들은 아재 아지매가 되고, 나 또한 성과 하나 없이 늙어간다. 사람은 직업이 있어야 한다..
3. 가족 이야기
아빠와 동생을 돌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난다. 뭔가를 해 먹이고, 일상적인 살림을 하고, 이렇게 짜잘하게 들어가는 시간들이 있다. 가사노동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당연해지는 것은 싫다. 논문과 병행하기는 조금 버겁다. 집에서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친가 친척들끼리 싸움이 있고, 아빠도 거기에 휘말려 있어서 동생과 나도 영향이 있다. 주변에 보면 많은 가족들이 크게 싸우고 연을 끊고 하는데, 모든 가족들이 겪는 통과의례인가? 생각했다.
4. 취미
한 때 건전한 취미를 만들어보고자 사진을 열심히 했었는데, 요즘은 많이 식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기도 하고. 요즘은 짜잘하게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데, 뭔가 그리 건전한 취미는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경쟁하는 게임의 경우 스트레스가 풀리지는 않고 더 쌓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이제 어떤 취미를 맘놓고 즐기기에는 논문이 너무 급해졌다.
5. 건강과 외모
지난 해에 78->68로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조금씩 근육을 불리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식사량을 늘리니 근육보다 지방이 더 빨리 느는 느낌… 요즘은 72-73 정도에서 왔다갔다 하는 중이다. 고지혈증 피검사 한번 더 하러 가야 하는데 미루고 있다. 운동 꾸준히 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식이요법 포기해서 치킨 피자 자주 먹긴 해서 이게 문제긴 하지만..)
올해 초에 올만에 펌을 하고, 가르마를 타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이라면서 헤어 디자이너 분이 허락도 안 구하시고 만들어버리신…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약간 나이 들어 보이긴 하는데, 대학원생은 너무 학생처럼 보여서 약간 나이 들어 보이는 것도 괜찮다 싶다. 그런데 머리가 점점 길어지다보니 눈을 찌르거나 덮는다. 집에서 공부할 때는 헤어밴드를 하는 중. 은근 불편해서 다시 짧게 할까? 고민중이다.
6. 그 외
진지한 글로 정리하고 싶은 문제들이 몇 있다. 그치만 그렇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글은 당분간 쓸 수가 없다. 그렇게 에너지가 없는 사이에 더이상 고민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면 한다.
사진 한 장 남긴다.
몇달 전에 후배들과 간 고궁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