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에게는 작은 성취들이 필요하다
원생에게는 작은 성취들이 필요하다.
대학원생이란 직업은 (노동과 급여가 존재하지 않아 엄밀한 의미에서 직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먼 미래의 성취를 바라보며 하는 일이다. 2013년 9월에 석사과정을 시작한 나는 어느덧 8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대학원에 몸담고 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 마음에 있는 일을 하겠다는 20대 중반의 포부는 어느덧 현실감에 차츰 물들어 버리고,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고 한없이 묻게 되는 가련한 영혼이 되었다. 고개를 돌리면, 어떤 친구는 결혼해 아이의 부모가 되고, 어떤 친구는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또 다른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빠르게 교수 임용에 성공했다. 그저 평범한 대학원생인 나는 그 사이에서 자꾸만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다.
몇년 전부터 하게 된 생각은,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그러하지만 대학원생에게 작은 성취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원은 먼 미래를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아니, 그 직업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박사를 받고 연구자로 인정받는 이후의 삶, 혹은 교수가 된 이후의 삶을 위해 지금의 과정이 있는 것이며, 이 '미래' 때문에 지금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 길고 거친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길을 둘러싼 외부 요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제적 문제도 그러하고, 다른 이들을 보고 뭔가 삶이 뒤쳐진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최근에는 부동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거 열심히 해도 나중에 답이 정말로 없는 거 아닐까?
그래도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연구자로서의 나는 끝장(?)을 보고 싶다. 많은 원생들이 비슷한 심리상태를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당근' 없이, 이 길을 유지하는 것은 조금 벅차다. 인간은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기를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정 없이, '나'는 고립되고 외롭게 불확실한 길을 걷는 불행한 인간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작은 성취들은 내 영혼의 '장작'인 셈이다.
철학이라는 분과의 특수성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단기 성과를 내기 어렵고, 공동 프로젝트도 거의 전무하다. 석사나 박사과정생의 논문은 인정받기 쉽지 않다. (몇몇 동료 연구자들은 존경스럽게도 이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공부를 하면서 번역서를 출판하거나, 좋은 논문을 쓰거나, 몇몇 강의 혹은 강연을 통해 좋은 평가를 얻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대학원생에게 이는 그리 쉽지 않다. 이는 오히려 미래를 조금 더 멀리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소소한' 성취들이 중요하다. 지난해에는 운동이 그런 역할을 했다. 3개월만에 7-8킬로를 감량하고, 조금씩 잡혀가는 복근을 보고,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위로받은 시간들이 있었다. 가끔 블로그에 글을 쓰고, 글이 좋다는 말에 조금은 행복해지던 시절도 있었다. 조교님 덕분에 도움 많이 받았다는 메일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논문에 집중하면서 영혼의 샘이 조금씩 고갈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무엇이 내게 소소하고도 어렵지 않은 성취가 될 수 있을까?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