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2020. 3. 24. 21:36

"아우슈비츠 이후의 서정시는 야만적이다"하고 아도르노는 적었다. 아도르노의 철학을 좋아하지만, 종종 그의 세계가 좁은 것이었음을 느낀다. '유럽중심주의'라는 표현은 다소 과도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적확하기도 하다. 유럽인, 특히 유태인인 동시에 유럽인인 그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악은 아우슈비츠였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서구 문명사회가 딛고 있는 다른 지역의 혈흔을, 그러나 지워지지 않을 그것을 문질러버린다. 아우슈비츠는 '보편적'인 비극이었을까?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진보를 가정한다면) 진보하는 인류의 역사를 크게 뒤틀리게 한 거대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신화로부터 벗어난 계몽이 다시 신화로 진입하는 그 결과물로서 아우슈비츠는 비-유럽인들에게도 동일한 의미로 그들의 세계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는 보편적인 비극의 자리를 확보함으로써, 인류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중국에서 시작되고 한국에서도 많은 환자를 내며 인종차별의 도구로 사용된지 얼마 되지 않아, 세계인 모두에게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나타나는 중이다. 나는 고통스러운 경험의 공유가 더 강한 연대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믿는다. 아우슈비츠와 코로나19 사이에서 비극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무용하고 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고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긍정적 메세지는 그런 가능성인 것 같다.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생이 있어야 그 다음도 있다.